1000억 기업 내려놓고 카우보이로…다시 태어나도 소 키울랍니다
가축이 행복하면 인간도 행복…한우, 영세화 벗어나야 산다
조태철 설성목장 대표가 횡성목장에서 소들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가 다가서자 자연스럽게 소들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충우 기자]
서울에서 자동차로 2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해발 850m 태기산 산기슭에 '횡성 설성목장'이 있다. 넓은 풀밭에서 한가롭게 소 수백 마리가 풀을 뜯어먹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곳은 방목해 키운 친환경 한우를 백화점과 유기농 유통체인 등을 통해 판매한다.
개 두 마리와 함께 소들을 돌보는 사람은 1970년대부터 40여 년간 소를 키워온 조태철 목장주(71)다. 그에겐 다른 축산농가와는 다른 특이한 경력이 하나 있다. 바로 소시지·베이컨 등을 만드는 육가공회사 에쓰푸드 창업자 겸 회장이라는 경력이다. 그는 목장과 함께 25년간 경영을 병행하면서 에쓰푸드를 매출 1000억원대 기업으로 키웠다. 2013년 이를 아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다시 축산인으로 돌아왔다. 축산과 식품경영을 모두 거쳐온 그에게 친환경으로 소를 키우는 이유와 한우 가격이 비싼 이유에 대해서 들어봤다.
―어디서 태어나고 자랐는지 듣고 싶다.
▷부모님 고향은 경기도 포천이지만 아버지께서 젊은 시절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셨다. 1947년 강북구 우이동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6년 건국대학교 축산대학에 입학했다.
―서울 출신인데 축산학과에 왜 들어갔나. 그때부터 축산에 관심이 많았나.
▷고등학교 시절에 외국 영화에 나오는 광활한 목장과 카우보이들의 자유로운 생활이 멋지게 보여 목장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나 축산학과에서 어떤 과목을 가르치는지, 졸업 후 어느 분야나 어떤 직장에서 일하게 되는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막연하게 자연과 동물을 좋아하고 평화로운 농촌생활을 동경했던 것이 축산학과에 지원한 이유다.
―자연에서 산다면 쌀농사나 다른 농업도 있었을 것 같은데.
▷쌀농사나 일반적인 농업 형태보다는 가축을 사육하면서 체계적으로 축산을 배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요즘으로 따지면 '자연인'이 되고 싶어서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는 건가.
▷내가 인생에서 항상 추구하고 싶었던 것이 자유였다. 당시 군사정권 시절이었기 때문에 자유인으로서 자연인으로 살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직업을 찾았다.
―건국대를 간 이유는.
▷그 당시 건국대 축산대학은 시대적인 요청에 의해서 축산 쪽으로 운영되고 있던 학과였다. 한국의 축산기술이 막 태동하던 시기였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국민 중 60%가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국가였다. 또 당시 건국대 축산대학이 제공하는 전액 장학생 혜택과 해외 연수제도도 어린 학생에게는 큰 매력이었다.
―원래 유학을 가려고 했나.
▷1973년 군 복무를 마치고 모교 교수님을 찾아가서 진로 상담을 한 후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 재학 중에 조교로 일하면서 해외 유학을 준비한다는 계획이었다. 실제로 많은 선후배들이 이런 과정을 통해 교수나 학자가 되었으나 난 학교 공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소를 키우기로 하게 된 것인가.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많은 양돈장 양계장 목장 그리고 사료공장 등을 견학하고 관련 분야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서 축산업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았고 내가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경험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울 사람이 소 키우는 게 어렵지 않았나.
▷1973년 8월 제대를 하고 12월에 충남 서산으로 내려가 거기서 목장 실습을 했다. 몇 개월간 목장실습을 한 후 강원도 춘천에서 유휴토지와 축사를 임대해 친구들과 함께 한우를 키우기 시작했다. 노후화된 양계장을 개조한 소규모 한우 목장이었지만 새로운 사육기술과 자부심을 가지고 목장을 운영했고 어느 정도 이익도 낼 수 있어서 향후 경기도 이천에 설성목장을 설립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여기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1976년 6월에 경기도 이천 설성면에 설성목장을 열었고 1983년에는 횡성에 설성목장 횡성지점을 세웠다. 시기적으로 축산이 성장하던 시절이기는 하지만 소값이 심하게 하락한다던지, 사료값이 폭등한다던지 하면서 경영이 어려웠던 시간이 많았다. 그래도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일했기 때문에 고생이라는 생각은 없었다. 단지 그럴 때마다 연구를 하고 분발해 어려움에 대처하려고 했다.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소를 방목으로 키운 것인가.
▷1976년부터 40년간 소를 키웠는데 처음부터 모든 소를 방목으로 키운 것은 아니다. 지금도 우리 소는 방목에 의해서도 키우고 우사에 가둬 놓고도 키운다.
―왜 소를 방목으로 키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나.
▷가능하면 자연적인 환경을 제공하고 소들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주면 소도 잘 자라고 생산하는 고기도 안전하고 품질이 좋게 생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처음부터 있었다. 그래야 최종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좋은 품질의 안전하고 신선한 한우를 제공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소들이 키워지고 있나.
▷횡성목장에서는 대체로 5월부터 10월까지 하절기 6개월간 초지에서 방목하며 11월부터 4월까지 동절기에는 축사 내에서 사육하게 된다. 축사에서 사육하더라도 축사 바닥에 깔짚을 충분히 깔아주고 소들이 편안히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항상 깨끗한 물과 건초를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번식우와 비육우에 대해서 잘 모른다.
▷번식우란 송아지를 분만하는 암소를 말하며 비육우란 고기 생산을 목적으로 고단백·고에너지의 배합사료를 주고 키우는 소를 말한다. 번식우는 보통 1년에 송아지 한 마리를 낳는데 비육우는 보통 생후 6개월에 비육을 개시하여 24개월 사육해 태어난 지 30개월쯤에 도축한다. 횡성목장에서 방목으로 자라는 소는 번식우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송아지다. 여기서 자란 송아지는 다른 소보다 튼튼하고 병치레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고기로 먹게 되는 비육우는 육사에서 키워야 우리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마블링이 많은 한우로 자란다.
―외국 소는 100% 방목으로 키우는 것 아닌가.
▷외국 소도 100% 방목은 아니다. 살을 찌울 때는 곡식을 먹인다. 방목으로 키운 소는 한국 소비자들 입맛에 맞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외국에서도 '그래스 피드 소'라고 풀만 먹여 키우는 소가 있긴 하다. 하지만 목초지가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래스 피드로 키우기가 어렵다.
―전체 키우는 소가 몇 마리인가.
▷경기도 이천목장이 초지 8만5000평과 축사 5000여 평에서 1500마리 규모의 한우 비육우를 사육하고 있다. 여기 강원도 횡성목장은 15만평 용지에서 번식우와 송아지 500여 마리를 방목해 키운다. 이와 별도로 '설성한우' 브랜드 참여 농가에 한우 비육우 1000마리를 위탁시켜 키우고 있다. 설성한우의 연간 판매두수는 1200마리 정도로 현재 진행 중인 한우 유통사업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계속 사육하는 소들을 늘리고 있다.
―총 3000마리 정도면 많은 숫자인가.
▷우리나라 한우농가의 평균 사육 규모와 비교하면 매우 큰 편이지만 국내 한우 사육두수 300만마리의 0.1%에 불과해 설성목장의 한우 사육으로 영세 한우농가들이 피해를 본다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사육기술과 판매 방식으로 한우산업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려고 한다.
―친환경으로 소를 키우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 텐데.
▷유기농 축산물 인증을 받으려면 가축에 유기농 인증을 받은 사료를 먹여서 키워야 하는데 이는 비용이 매우 많이 들고 비현실적인 면이 있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사료와 건초를 구해야 하는데 사람이 소비할 농산물의 유기농 인증도 어려운데 가축을 위한 사료를 유기농법으로 생산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간혹 해외에서 값비싼 유기농 인증을 받은 사료를 수입해 소규모의 가축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과연 그렇게 비용을 많이 들여 몇 배가 높은 가격의 축산물을 생산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반면, 친환경 무항생제 축산물 인증은 상대적으로 받기 쉽다. 가축을 좋은 환경에서 사육하고 사료에 항생제 사용을 금하면서 병에 걸린 경우에만 수의사 진료에 의해 엄격하게 항생제를 사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설성목장은 친환경 무항생제 축산농장 인증을 받고 규정을 잘 준수하고 있다.
조태철 설성목장 대표가 횡성목장 우사에서 소들에게 여물을 주고 있다.
―왜 소를 행복하게 키워야 하나.
▷우리나라처럼 땅값이 비싸고 제한적인 환경에서 모든 소를 방목해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소를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는 것은 의미가 있다. 가축이 행복하면 인간도 행복해질 수 있다. 키우는 사람도 행복하고 소비하는 사람도 행복해질 수 있다. 축사에 소를 키우더라도 소가 안락하고 편안하게 지내도록 하고 친환경 건초를 준다. 소들이 편안하게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친환경이고 동물 복지아니겠나.
―항생제를 쓰지 않는 것 외에 설성목장 소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목장 주변 초지에서 수단그라스와 호밀을 직접 재배한다. 또 사람이 먹는 요구르트와 같은 생균제도 함께 먹인다. 곡물과 조사료 비율을 6대4 정도로 유지해 먹인다. 조사료(粗飼料)란 섬유질이 많은 사료를 말한다. 소는 원래 풀밭에서 풀을 먹으며 살던 동물이다. 애초에 소의 위는 풀을 소화하는 데 알맞게 만들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섬유소가 많은 풀을 먹어야 위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지방층을 많이 만들기 위해 곡물 사료만 먹여 일부러 살을 찌운 소들은 원래 먹어야 할 풀을 먹지 못해 위가 약해지게 마련이고, 위가 약해지면 당연히 병에 걸리기 쉽다. 면역력이 약해진 이런 소들이 병에 걸리지 않게 하려면 각종 항생제와 항균제로 범벅이 된 사료를 먹일 수밖에 없다. 결국은 인간이 그런 소를 먹는다.
―한국 사람들은 소고기를 정말 좋아한다. 특히 한우를 좋아하는 것 같다.
▷1970년대 초부터 축산을 시작했는데 그때는 한우라는 개념이 없었다. 고기가 귀했기 때문에 한우고기든 젖소고기든 수입육이든 다 귀하고 먹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한우보다 젖소가 더 비싼 시절도 있었다. 젖소는 빨리 자라 쉽게 고기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국민에게 소고기를 빨리 많이 먹여야 한다는 생각에 젖소 품종을 수입해 농가에 분양하던 시절도 있었다. 육우(고기용으로 키우는 젖소 품종 소의 수컷)가 체구가 크고 빨리 자라니까 육우를 정부에서 수입해 축산 농가에 분양했다. 지금은 소득수준이 올라가고 좋은 품질의 소고기를 먹고 싶어 하면서 한우가 점점 더 개량되고 육질도 개선되고 있다. 또 수입육이나 육우와 차별화하기 위해 정부와 축산단체에서 한우를 프리미엄화하는 데 노력했고 그 덕에 지금의 한우가 고급 제품이 될 수 있었다.
―한우가 수입산에 비해 비싸다는 지적도 많다.
▷현재 전체 소고기 시장 중 한우가 소비되는 비중이 38%까지 떨어졌다. 나머지 62%를 미국산과 호주산 소고기가 차지하고 있다. 가격이 높은 이유는 한우 사육농가 규모가 영세하고 국가에서 한우농가를 보호하는 면도 있지만 사료 원료나 건초를 수입에 의존하는 것도 크다. 국제 소고기 가격에 비해 우리 한우가 비싼 것은 사실이다. 한우가 품질이 좋고 맛이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비싼 측면이 있다. 앞으로 한우산업의 과제는 좋은 품질을 유지하면서 가격을 낮추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수입육에 고객을 빼앗기게 되고 우리 목장을 비롯해 국내 한우사업 전체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영세한 것보다는 기업화를 해야 한다는 것인가.
▷사육 환경과 기술을 개선해서 안전하고 신선한 좋은 품질의 한우 고기를 고객에게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농축산업을 영세하게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측면이 있다.
―우리 한우의 또 다른 문제점이 있다면.
▷우리 한우는 마블링을 좋게 하기 위해 키우는 기간이 늘어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용이 올라가고 한우값이 비싸지는 원인이 된다(한우는 보통 사육기간이 30개월인데 육우는 20개월이다). 설성목장에서는 사육기간을 3개월 정도 단축해 사육비용을 낮추면서 육질 향상과 육량을 증대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블링이 많을수록 높은 등급을 받는 지금의 등급 제도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마블링 등급이 높은 고기는 지방이 많아서 건강하지는 않다. 그런데 높은 등급을 받아야 한우를 비싸게 팔 수 있으니 농민들이 모두 마블링이 많은 소만 키우고 있다. 사실 이것은 축산농가 측면만 생각한 것인데 소비자나 국가 전체도 생각해야 한다. 누군가는 소비자에게 진실을 얘기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이 축산 문제를 개혁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 축산농가들이 점점 노령화되고 있고 영세화돼 가고 있다. 농업이나 축산업이 우리나라 경제 발전 과정에서 소외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이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이 글로벌 경쟁 시대라는 것이다. 국산이라는 강점만 내세우기에는 한계가 있다.
―외국산 소와 가격 경쟁이 불리한 것 아닌가.
▷어쩔 수 없다. 미국 농장에 가보면 작은 곳이 소 5000마리이고, 보통 1만마리를 키운다. 큰 곳은 몇 만마리 소를 초원에서 키운다. 사료 공장 같은 곳이 농장에 있어서 거기서 사료를 배합하고, 곡창지대에서 기계로 수확한 농작물을 기차에 실어서 목장으로 바로 가져오는 곳도 있다. 경쟁력 면에서 우리나라가 상대가 될 수 없다.
―친환경 동물 복지 한우로 프리미엄 시장을 키우는 것이 대안 아닌가.
▷우리나라는 토지가격이 비싸서 많은 소를 방목으로 키우기는 힘들다. 축사에서도 편안한 공간을 제공하고 사료와 물을 먹기에 편리하도록 해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가축이 고통 없이 행복해질 수 있어야 한다. 동물복지농장 인증제도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어려운점도 많다. 그래서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한우목장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간이 소를 잡아먹는데 동물 복지가 가능한것인가.
▷법륜 스님이 '동물과 인간 중 누가 더 중요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생명은 둘 다 중요하지만 만약 인간과 동물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 인간이 더 중요하다'고 답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동물도 인간만큼 중요하다면 식물의 생명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결국 인간을 위해 먹지만 그래도 살아 있는 동안은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해주려고 한다. 또 비인간적인 공장식 축산은 피하려고 한다.
조태철 대표는 횡성목장에서 막내(골든리트리버)와 콩이 등 두 마리 개와 함께 산다.
―10년간 소를 키우다가 육가공사업을 하게 됐다.
▷10년간 소를 키우면서 단순히 키우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팔 것인지 생각했다. 그래서 목장을 경영하면서도 항상 제값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1987년에 서울 성수동에 작은 포장육 공장을 시작했다. 고기를 절단해 포장해서 파는 사업이다. 설성목장 고기도 팔고 다른 한우나 돼지고기도 같이 팔았는데 당시만 해도 포장육 시장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당시에는 정육점에서 잘라서 먹는 것이 보편적이었기 때문이다. 초기에 신세계백화점과 공무원 연금 매장에서 고기를 주로 팔았다.
―유통을 하다가 육가공으로 가게 된 이유는.
▷포장육 판매를 몇 년간 하다 보니 전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내린 결론이 고기는 칼로 자르고 포장한다고해서 부가가치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가가치를 좀 더 창출하는 육가공사업에 진출하기로 결심하고 1990년에 성수동 공장을 육가공 공장으로 전환했다. 그러다 1995년에는 아예 안성에 공장을 짓고 본격적으로 육가공사업을 하게 됐다.
―그 육가공 회사(에쓰푸드)를 현재 직원 500여 명에 매출 1500억원대 알짜 기업으로 키웠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이다. 자유를 얻겠다고 목장에서 여유롭게 지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면서 지내야 했다. 1995년 육가공사업에 진출했을 때가 우리나라에서 외식산업이 커지면서 햄이나 소시지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적절했다. 하지만 1998년에 IMF를 맞고 또 2년 동안 고생했다.
―육가공이 잘되면 목장을 접고 육가공사업에 전념할 수도 있었을 텐데.
▷경기도와 강원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두 가지를 병행했다. 하지만 두 가지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목장이 더 좋다. 그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2013년 아들에게 회사를 넘긴 것인가.
▷그렇다. 에쓰푸드 설립 25년이 지난 2013년에 충북 음성에 최첨단 육가공 공장을 준공하고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 내가 20대에 열정을 가지고 시작했던 한우목장을 완성하고 싶었다. 은퇴식을 하고 아들에게 모든 경영을 넘기고 다시 출근하지 않았다. 사람이 두 가지를 다 잘할 수는 없다. 만약에 내가 목장만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반대로 목장을 그만두고 육가공만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봤는데 나는 목장만 했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육가공사업을 하면서도 항상 내게는 목장이 안식처였다.
―정말 아들에게 경영을 맡기고 하나도 개입하지 않았나.
▷내가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자유와 독립이다. 내가 그 회사를 설립했고 또 그만큼 만들어 놨지만 후세가 와서 경영하더라도 자주적으로 독립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지 본인도 신이 난다. 그것을 누구 아버지, 부모 그늘에서 눈치 보면서 경영해나가면 안 된다.
―경영철학이 있다면.
▷너무 크게 성장하는 것보다 잘할 수 있는 일에서 좋은 회사가 되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좋은 목장이 되는 것이다. 소를 많이 키우는 것보다는 좋은 소를 키우는 것이 내게는 더 보람 있다. 내가 살아온 것이 인생의 모범 답안은 아니겠지만 변하지 않는 철학이나 사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곳에 진출할 게 아니라 잘할 수 있는, 좋아하는 쪽으로 집중해야 한다. 젊은 사람들은 빠른 기간 내에 성공하고 대박을 터뜨리는 것을 바라는데 길게 봤으면 좋겠다.
▶▶ 조태철 설성목장 목장주(농업회사법인 설성목장 대표)는…
1947년 서울에서 출생해 서울에서 자랐다. 서울고를 졸업하고 건국대 축산학과를 나와 1976년 스물여덟 나이에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에 목장을 차렸다. 1983년에는 강원도 횡성에 방목 목장을 열었다. 1989년 육가공사업에 진출해 매출액 1000억원대의 강소기업 에쓰푸드를 키워냈다. 기업 경영과 소를 키우는 일을 함께하다 2013년 회사를 장남에게 맡기고 목장으로 돌아갔다. 설성목장 한우는 현재 백화점·유기농 유통체인 등에서 친환경 프리미엄 소고기로 팔리고 있다. 2개의 한우구이 전문점과 5개의 미트마켓(정육점)도 운영하고 있다.
[이덕주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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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기업 내려놓고 카우보이로…다시 태어나도 소 키울랍니다
가축이 행복하면 인간도 행복…한우, 영세화 벗어나야 산다
조태철 설성목장 대표가 횡성목장에서 소들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가 다가서자 자연스럽게 소들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충우 기자]
서울에서 자동차로 2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해발 850m 태기산 산기슭에 '횡성 설성목장'이 있다. 넓은 풀밭에서 한가롭게 소 수백 마리가 풀을 뜯어먹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곳은 방목해 키운 친환경 한우를 백화점과 유기농 유통체인 등을 통해 판매한다.
개 두 마리와 함께 소들을 돌보는 사람은 1970년대부터 40여 년간 소를 키워온 조태철 목장주(71)다. 그에겐 다른 축산농가와는 다른 특이한 경력이 하나 있다. 바로 소시지·베이컨 등을 만드는 육가공회사 에쓰푸드 창업자 겸 회장이라는 경력이다. 그는 목장과 함께 25년간 경영을 병행하면서 에쓰푸드를 매출 1000억원대 기업으로 키웠다. 2013년 이를 아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다시 축산인으로 돌아왔다. 축산과 식품경영을 모두 거쳐온 그에게 친환경으로 소를 키우는 이유와 한우 가격이 비싼 이유에 대해서 들어봤다.
―어디서 태어나고 자랐는지 듣고 싶다.
▷부모님 고향은 경기도 포천이지만 아버지께서 젊은 시절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셨다. 1947년 강북구 우이동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6년 건국대학교 축산대학에 입학했다.
―서울 출신인데 축산학과에 왜 들어갔나. 그때부터 축산에 관심이 많았나.
▷고등학교 시절에 외국 영화에 나오는 광활한 목장과 카우보이들의 자유로운 생활이 멋지게 보여 목장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나 축산학과에서 어떤 과목을 가르치는지, 졸업 후 어느 분야나 어떤 직장에서 일하게 되는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막연하게 자연과 동물을 좋아하고 평화로운 농촌생활을 동경했던 것이 축산학과에 지원한 이유다.
―자연에서 산다면 쌀농사나 다른 농업도 있었을 것 같은데.
▷쌀농사나 일반적인 농업 형태보다는 가축을 사육하면서 체계적으로 축산을 배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요즘으로 따지면 '자연인'이 되고 싶어서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는 건가.
▷내가 인생에서 항상 추구하고 싶었던 것이 자유였다. 당시 군사정권 시절이었기 때문에 자유인으로서 자연인으로 살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직업을 찾았다.
―건국대를 간 이유는.
▷그 당시 건국대 축산대학은 시대적인 요청에 의해서 축산 쪽으로 운영되고 있던 학과였다. 한국의 축산기술이 막 태동하던 시기였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국민 중 60%가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국가였다. 또 당시 건국대 축산대학이 제공하는 전액 장학생 혜택과 해외 연수제도도 어린 학생에게는 큰 매력이었다.
―원래 유학을 가려고 했나.
▷1973년 군 복무를 마치고 모교 교수님을 찾아가서 진로 상담을 한 후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 재학 중에 조교로 일하면서 해외 유학을 준비한다는 계획이었다. 실제로 많은 선후배들이 이런 과정을 통해 교수나 학자가 되었으나 난 학교 공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소를 키우기로 하게 된 것인가.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많은 양돈장 양계장 목장 그리고 사료공장 등을 견학하고 관련 분야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서 축산업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았고 내가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경험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울 사람이 소 키우는 게 어렵지 않았나.
▷1973년 8월 제대를 하고 12월에 충남 서산으로 내려가 거기서 목장 실습을 했다. 몇 개월간 목장실습을 한 후 강원도 춘천에서 유휴토지와 축사를 임대해 친구들과 함께 한우를 키우기 시작했다. 노후화된 양계장을 개조한 소규모 한우 목장이었지만 새로운 사육기술과 자부심을 가지고 목장을 운영했고 어느 정도 이익도 낼 수 있어서 향후 경기도 이천에 설성목장을 설립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여기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1976년 6월에 경기도 이천 설성면에 설성목장을 열었고 1983년에는 횡성에 설성목장 횡성지점을 세웠다. 시기적으로 축산이 성장하던 시절이기는 하지만 소값이 심하게 하락한다던지, 사료값이 폭등한다던지 하면서 경영이 어려웠던 시간이 많았다. 그래도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일했기 때문에 고생이라는 생각은 없었다. 단지 그럴 때마다 연구를 하고 분발해 어려움에 대처하려고 했다.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소를 방목으로 키운 것인가.
▷1976년부터 40년간 소를 키웠는데 처음부터 모든 소를 방목으로 키운 것은 아니다. 지금도 우리 소는 방목에 의해서도 키우고 우사에 가둬 놓고도 키운다.
―왜 소를 방목으로 키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나.
▷가능하면 자연적인 환경을 제공하고 소들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주면 소도 잘 자라고 생산하는 고기도 안전하고 품질이 좋게 생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처음부터 있었다. 그래야 최종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좋은 품질의 안전하고 신선한 한우를 제공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소들이 키워지고 있나.
▷횡성목장에서는 대체로 5월부터 10월까지 하절기 6개월간 초지에서 방목하며 11월부터 4월까지 동절기에는 축사 내에서 사육하게 된다. 축사에서 사육하더라도 축사 바닥에 깔짚을 충분히 깔아주고 소들이 편안히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항상 깨끗한 물과 건초를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번식우와 비육우에 대해서 잘 모른다.
▷번식우란 송아지를 분만하는 암소를 말하며 비육우란 고기 생산을 목적으로 고단백·고에너지의 배합사료를 주고 키우는 소를 말한다. 번식우는 보통 1년에 송아지 한 마리를 낳는데 비육우는 보통 생후 6개월에 비육을 개시하여 24개월 사육해 태어난 지 30개월쯤에 도축한다. 횡성목장에서 방목으로 자라는 소는 번식우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송아지다. 여기서 자란 송아지는 다른 소보다 튼튼하고 병치레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고기로 먹게 되는 비육우는 육사에서 키워야 우리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마블링이 많은 한우로 자란다.
―외국 소는 100% 방목으로 키우는 것 아닌가.
▷외국 소도 100% 방목은 아니다. 살을 찌울 때는 곡식을 먹인다. 방목으로 키운 소는 한국 소비자들 입맛에 맞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외국에서도 '그래스 피드 소'라고 풀만 먹여 키우는 소가 있긴 하다. 하지만 목초지가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래스 피드로 키우기가 어렵다.
―전체 키우는 소가 몇 마리인가.
▷경기도 이천목장이 초지 8만5000평과 축사 5000여 평에서 1500마리 규모의 한우 비육우를 사육하고 있다. 여기 강원도 횡성목장은 15만평 용지에서 번식우와 송아지 500여 마리를 방목해 키운다. 이와 별도로 '설성한우' 브랜드 참여 농가에 한우 비육우 1000마리를 위탁시켜 키우고 있다. 설성한우의 연간 판매두수는 1200마리 정도로 현재 진행 중인 한우 유통사업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계속 사육하는 소들을 늘리고 있다.
―총 3000마리 정도면 많은 숫자인가.
▷우리나라 한우농가의 평균 사육 규모와 비교하면 매우 큰 편이지만 국내 한우 사육두수 300만마리의 0.1%에 불과해 설성목장의 한우 사육으로 영세 한우농가들이 피해를 본다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사육기술과 판매 방식으로 한우산업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려고 한다.
―친환경으로 소를 키우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 텐데.
▷유기농 축산물 인증을 받으려면 가축에 유기농 인증을 받은 사료를 먹여서 키워야 하는데 이는 비용이 매우 많이 들고 비현실적인 면이 있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사료와 건초를 구해야 하는데 사람이 소비할 농산물의 유기농 인증도 어려운데 가축을 위한 사료를 유기농법으로 생산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간혹 해외에서 값비싼 유기농 인증을 받은 사료를 수입해 소규모의 가축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과연 그렇게 비용을 많이 들여 몇 배가 높은 가격의 축산물을 생산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반면, 친환경 무항생제 축산물 인증은 상대적으로 받기 쉽다. 가축을 좋은 환경에서 사육하고 사료에 항생제 사용을 금하면서 병에 걸린 경우에만 수의사 진료에 의해 엄격하게 항생제를 사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설성목장은 친환경 무항생제 축산농장 인증을 받고 규정을 잘 준수하고 있다.
조태철 설성목장 대표가 횡성목장 우사에서 소들에게 여물을 주고 있다.
―왜 소를 행복하게 키워야 하나.
▷우리나라처럼 땅값이 비싸고 제한적인 환경에서 모든 소를 방목해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소를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는 것은 의미가 있다. 가축이 행복하면 인간도 행복해질 수 있다. 키우는 사람도 행복하고 소비하는 사람도 행복해질 수 있다. 축사에 소를 키우더라도 소가 안락하고 편안하게 지내도록 하고 친환경 건초를 준다. 소들이 편안하게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친환경이고 동물 복지아니겠나.
―항생제를 쓰지 않는 것 외에 설성목장 소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목장 주변 초지에서 수단그라스와 호밀을 직접 재배한다. 또 사람이 먹는 요구르트와 같은 생균제도 함께 먹인다. 곡물과 조사료 비율을 6대4 정도로 유지해 먹인다. 조사료(粗飼料)란 섬유질이 많은 사료를 말한다. 소는 원래 풀밭에서 풀을 먹으며 살던 동물이다. 애초에 소의 위는 풀을 소화하는 데 알맞게 만들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섬유소가 많은 풀을 먹어야 위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지방층을 많이 만들기 위해 곡물 사료만 먹여 일부러 살을 찌운 소들은 원래 먹어야 할 풀을 먹지 못해 위가 약해지게 마련이고, 위가 약해지면 당연히 병에 걸리기 쉽다. 면역력이 약해진 이런 소들이 병에 걸리지 않게 하려면 각종 항생제와 항균제로 범벅이 된 사료를 먹일 수밖에 없다. 결국은 인간이 그런 소를 먹는다.
―한국 사람들은 소고기를 정말 좋아한다. 특히 한우를 좋아하는 것 같다.
▷1970년대 초부터 축산을 시작했는데 그때는 한우라는 개념이 없었다. 고기가 귀했기 때문에 한우고기든 젖소고기든 수입육이든 다 귀하고 먹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한우보다 젖소가 더 비싼 시절도 있었다. 젖소는 빨리 자라 쉽게 고기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국민에게 소고기를 빨리 많이 먹여야 한다는 생각에 젖소 품종을 수입해 농가에 분양하던 시절도 있었다. 육우(고기용으로 키우는 젖소 품종 소의 수컷)가 체구가 크고 빨리 자라니까 육우를 정부에서 수입해 축산 농가에 분양했다. 지금은 소득수준이 올라가고 좋은 품질의 소고기를 먹고 싶어 하면서 한우가 점점 더 개량되고 육질도 개선되고 있다. 또 수입육이나 육우와 차별화하기 위해 정부와 축산단체에서 한우를 프리미엄화하는 데 노력했고 그 덕에 지금의 한우가 고급 제품이 될 수 있었다.
―한우가 수입산에 비해 비싸다는 지적도 많다.
▷현재 전체 소고기 시장 중 한우가 소비되는 비중이 38%까지 떨어졌다. 나머지 62%를 미국산과 호주산 소고기가 차지하고 있다. 가격이 높은 이유는 한우 사육농가 규모가 영세하고 국가에서 한우농가를 보호하는 면도 있지만 사료 원료나 건초를 수입에 의존하는 것도 크다. 국제 소고기 가격에 비해 우리 한우가 비싼 것은 사실이다. 한우가 품질이 좋고 맛이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비싼 측면이 있다. 앞으로 한우산업의 과제는 좋은 품질을 유지하면서 가격을 낮추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수입육에 고객을 빼앗기게 되고 우리 목장을 비롯해 국내 한우사업 전체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영세한 것보다는 기업화를 해야 한다는 것인가.
▷사육 환경과 기술을 개선해서 안전하고 신선한 좋은 품질의 한우 고기를 고객에게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농축산업을 영세하게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측면이 있다.
―우리 한우의 또 다른 문제점이 있다면.
▷우리 한우는 마블링을 좋게 하기 위해 키우는 기간이 늘어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용이 올라가고 한우값이 비싸지는 원인이 된다(한우는 보통 사육기간이 30개월인데 육우는 20개월이다). 설성목장에서는 사육기간을 3개월 정도 단축해 사육비용을 낮추면서 육질 향상과 육량을 증대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블링이 많을수록 높은 등급을 받는 지금의 등급 제도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마블링 등급이 높은 고기는 지방이 많아서 건강하지는 않다. 그런데 높은 등급을 받아야 한우를 비싸게 팔 수 있으니 농민들이 모두 마블링이 많은 소만 키우고 있다. 사실 이것은 축산농가 측면만 생각한 것인데 소비자나 국가 전체도 생각해야 한다. 누군가는 소비자에게 진실을 얘기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이 축산 문제를 개혁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 축산농가들이 점점 노령화되고 있고 영세화돼 가고 있다. 농업이나 축산업이 우리나라 경제 발전 과정에서 소외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이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이 글로벌 경쟁 시대라는 것이다. 국산이라는 강점만 내세우기에는 한계가 있다.
―외국산 소와 가격 경쟁이 불리한 것 아닌가.
▷어쩔 수 없다. 미국 농장에 가보면 작은 곳이 소 5000마리이고, 보통 1만마리를 키운다. 큰 곳은 몇 만마리 소를 초원에서 키운다. 사료 공장 같은 곳이 농장에 있어서 거기서 사료를 배합하고, 곡창지대에서 기계로 수확한 농작물을 기차에 실어서 목장으로 바로 가져오는 곳도 있다. 경쟁력 면에서 우리나라가 상대가 될 수 없다.
―친환경 동물 복지 한우로 프리미엄 시장을 키우는 것이 대안 아닌가.
▷우리나라는 토지가격이 비싸서 많은 소를 방목으로 키우기는 힘들다. 축사에서도 편안한 공간을 제공하고 사료와 물을 먹기에 편리하도록 해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가축이 고통 없이 행복해질 수 있어야 한다. 동물복지농장 인증제도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어려운점도 많다. 그래서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한우목장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간이 소를 잡아먹는데 동물 복지가 가능한것인가.
▷법륜 스님이 '동물과 인간 중 누가 더 중요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생명은 둘 다 중요하지만 만약 인간과 동물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 인간이 더 중요하다'고 답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동물도 인간만큼 중요하다면 식물의 생명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결국 인간을 위해 먹지만 그래도 살아 있는 동안은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해주려고 한다. 또 비인간적인 공장식 축산은 피하려고 한다.
조태철 대표는 횡성목장에서 막내(골든리트리버)와 콩이 등 두 마리 개와 함께 산다.
―10년간 소를 키우다가 육가공사업을 하게 됐다.
▷10년간 소를 키우면서 단순히 키우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팔 것인지 생각했다. 그래서 목장을 경영하면서도 항상 제값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1987년에 서울 성수동에 작은 포장육 공장을 시작했다. 고기를 절단해 포장해서 파는 사업이다. 설성목장 고기도 팔고 다른 한우나 돼지고기도 같이 팔았는데 당시만 해도 포장육 시장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당시에는 정육점에서 잘라서 먹는 것이 보편적이었기 때문이다. 초기에 신세계백화점과 공무원 연금 매장에서 고기를 주로 팔았다.
―유통을 하다가 육가공으로 가게 된 이유는.
▷포장육 판매를 몇 년간 하다 보니 전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내린 결론이 고기는 칼로 자르고 포장한다고해서 부가가치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가가치를 좀 더 창출하는 육가공사업에 진출하기로 결심하고 1990년에 성수동 공장을 육가공 공장으로 전환했다. 그러다 1995년에는 아예 안성에 공장을 짓고 본격적으로 육가공사업을 하게 됐다.
―그 육가공 회사(에쓰푸드)를 현재 직원 500여 명에 매출 1500억원대 알짜 기업으로 키웠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이다. 자유를 얻겠다고 목장에서 여유롭게 지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면서 지내야 했다. 1995년 육가공사업에 진출했을 때가 우리나라에서 외식산업이 커지면서 햄이나 소시지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적절했다. 하지만 1998년에 IMF를 맞고 또 2년 동안 고생했다.
―육가공이 잘되면 목장을 접고 육가공사업에 전념할 수도 있었을 텐데.
▷경기도와 강원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두 가지를 병행했다. 하지만 두 가지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목장이 더 좋다. 그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2013년 아들에게 회사를 넘긴 것인가.
▷그렇다. 에쓰푸드 설립 25년이 지난 2013년에 충북 음성에 최첨단 육가공 공장을 준공하고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 내가 20대에 열정을 가지고 시작했던 한우목장을 완성하고 싶었다. 은퇴식을 하고 아들에게 모든 경영을 넘기고 다시 출근하지 않았다. 사람이 두 가지를 다 잘할 수는 없다. 만약에 내가 목장만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반대로 목장을 그만두고 육가공만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봤는데 나는 목장만 했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육가공사업을 하면서도 항상 내게는 목장이 안식처였다.
―정말 아들에게 경영을 맡기고 하나도 개입하지 않았나.
▷내가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자유와 독립이다. 내가 그 회사를 설립했고 또 그만큼 만들어 놨지만 후세가 와서 경영하더라도 자주적으로 독립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지 본인도 신이 난다. 그것을 누구 아버지, 부모 그늘에서 눈치 보면서 경영해나가면 안 된다.
―경영철학이 있다면.
▷너무 크게 성장하는 것보다 잘할 수 있는 일에서 좋은 회사가 되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좋은 목장이 되는 것이다. 소를 많이 키우는 것보다는 좋은 소를 키우는 것이 내게는 더 보람 있다. 내가 살아온 것이 인생의 모범 답안은 아니겠지만 변하지 않는 철학이나 사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곳에 진출할 게 아니라 잘할 수 있는, 좋아하는 쪽으로 집중해야 한다. 젊은 사람들은 빠른 기간 내에 성공하고 대박을 터뜨리는 것을 바라는데 길게 봤으면 좋겠다.
▶▶ 조태철 설성목장 목장주(농업회사법인 설성목장 대표)는…
1947년 서울에서 출생해 서울에서 자랐다. 서울고를 졸업하고 건국대 축산학과를 나와 1976년 스물여덟 나이에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에 목장을 차렸다. 1983년에는 강원도 횡성에 방목 목장을 열었다. 1989년 육가공사업에 진출해 매출액 1000억원대의 강소기업 에쓰푸드를 키워냈다. 기업 경영과 소를 키우는 일을 함께하다 2013년 회사를 장남에게 맡기고 목장으로 돌아갔다. 설성목장 한우는 현재 백화점·유기농 유통체인 등에서 친환경 프리미엄 소고기로 팔리고 있다. 2개의 한우구이 전문점과 5개의 미트마켓(정육점)도 운영하고 있다.
[이덕주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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